ㆍ작성일 :
25-05-14 10:09
'치매머니'의 경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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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 조회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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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다. 살아온 지난날이 흐릿해지다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감정적 슬픔에 그치지 않는다. 돌봄 문제와 치료비, 간병비, 요양시설 비용 등 현실적 고충이 따라온다. 더 큰 문제는 환자에게 돈이 있어도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치매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경제적 자율권이 사실상 정지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80대 어머니가 수억원대 예금과 부동산을 갖고 있더라도 은행은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출금을 거부한다. 부동산도 처분이 불가능하다. 법적 대리인 지정이 되어 있지 않다면, 자녀는 어머니 재산으로 병원비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은 대출에 의존하고 어머니의 자산은 묶인 채 잠들어 있다. 이처럼 치매 환자 본인이 스스로 쓸 수 없는 돈, 묶여 있는 자산을 일컬어 ‘치매 머니’라고 부른다. 이는 당사자와 가족만의 고통으로 그치지 않는다. 쓸 수 없는 자산이 계속 늘어나면 국가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치매 머니 규모가 약 252조엔(약 2400조원)에 달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65세 이상 고령자 중 약 10%가 치매를 앓고 있고, 경도인지장애까지 포함하면 인지기능 저하 경험자는 30%에 가깝다.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국내 첫 전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 치매 환자는 124만여명이며 1인당 평균 자산 2억원, 치매 머니는 국내총생산(GDP)의 6.4%인 154조원이다. 이 수치는 2050년이면 GDP의 15.6%인 488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부동산 비중이 높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국가 경제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액이다. 개인의 기억 공백이 국가 재정 공백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비한 제도적 인프라나 사회적 인식은 미흡하다. 현행 성년후견제도는 치매 진단 이후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 재산 관리를 맡기는 구조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건강할 때 미리 계약을 맺어 대비하는 임의후견제도나 신탁제도는 복잡한 서류와 비용 부담 때문에 외면받고 있다. 이대로라면 더 많은 자산이 묶이고, 가족은 고통받으며, 국가는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신탁제도를 일찍부터 활성화했다. 치매가 오기 전에 본인이 신뢰하는 가족에게 재산 관리를 맡기고, 용도와 방식까지 미리 설정하는 형태다. 부동산 처분, 병원비 지출, 상속 구조까지 본인이 직접 설계할 수 있어 사후 분쟁도 줄일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이를 참고해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나 아직 걸음마 단계다. 새 정부는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길 바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사전 준비다. 치매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한순간에 모든 권리를 잃게 된다. 건강할 때, 정신이 또렷할 때 내 재산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계획을 세워두는 게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정기적으로 자산을 점검하고, 신탁이나 공증을 통해 내 뜻을 문서화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과정은 단지 돈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을지,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존엄의 시간이기도 하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평소 마음이 쓰였던 곳에 유산을 분배하며 자산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최근 “부자로 죽는 것은 불명예”라며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버크셔해서웨이 CEO 워런 버핏 역시 “죽을 때까지 돈을 쥐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돈을 삶의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고, 살아 있는 동안 의미 있게 쓰자는 철학을 강조했는데 되새겨볼 만하다. 돈이 인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다스릴 수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 보자. 지금 주어진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또한 남은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다. 건강할 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사랑하는 이들과 여행을 떠나며 추억을 쌓아보자. 웃음과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겨두자. 지금 시작하자. 치매는 막을 수 없더라도 치매 머니는 막을 수 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47119800&code=11171450&cp=nv |